:3 하혜희
여럿 중에서, 태초에 혜희가 있었다. 혜희는 왜 하필 자신이 골라졌는지 불만을 갖지 않는다. 혜희, 나갑니다! 같은 힘찬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알 수는 없다. 이런 그림이 나올 줄은 몰랐네요, 말하고 혜희는 웃는다. 혜희는 잘 웃는다. 자기에게 남은 유일한 일이라는 듯이 그렇게 한다. 혜희를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혜희는 배지를 받아든다. 이거 꼭 달아야 하나요? 배지에는 검은 배경에 흰 선으로 한 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혜희는 받고, 단다. 그것은 이제는 망해버린 사령부의 공식 화자 대리 배지다. 혜희가 똑바로 서서 웃음을 터뜨린다. 거울이 없어도 혜희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런 어리석은 것은 또 언제 만들었답니까? 또 언제까지 떠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찾아나설 것입니다, 우리는 저 짐승들을 꿈에서 건져내 참호에 처박아버릴 것이고, 이럴 것이고 저럴 것이고, 아무튼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의례는 이 정도로 합시다. 그간 많이 했으니. 다짐 많이 했으니.
[해1]
[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