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신자

얼굴이 붉은 사람이 품에 포도주병을 껴안고서 혜희에게 부딪친다. 제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한 이 사람은 풀린 눈으로 허공을 더듬다 혜희의 창살 같은 시선과 마주치는데, 혜희는 표정 없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으며, 혜희의 가슴팍에서는 표정 없는 얼굴이 그려진 검은 배지가 빛나고 있다.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이 사람은 약간의 두려움을 이겨내며 혜희에게 묻는다. 당신은 천사이십니까? 혜희는 이 사람의 손목을 붙잡고 말한다. 내가 너를 죽이거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지만, 너는 나를 모욕하지 말라. 아! 그렇다면 당신이 혜희입니까? 취한 이는 크게 눈을 뜨며 크게 외친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로 가십니까! 많은 이들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몇 분 전까지 사령부 마당으로 밀고 들어와 혜희의 목을 내놓으라고 외치던 이들 중 하나였고, 혜희는 이제야 그를 알아보는데, 그는 사려 깊은 손짓으로 진한 녹색의 단단한 술병을 건네고 있으며, 술병에는 아무 술도 남아 있지가 않다. 혜희는 취한 이의 손목을 놓는다. 혜희는 눈을 내리깔며 인사한다. 신자도 그렇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