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조상 모양의 사자

도대체 누가 너한테 말해도 좋다고 했어? 조상은 혜희와 y 사이에 서 있고 죄라도 지은 듯 대답하지 않는다. 조상은 한 팔을 뻗고 있다. 조상은 앉아 있다. 조상은 울고 있다. 조상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 팔로 입을 가리고 있다. 조상은 한 팔을 등 뒤에 감춘 채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으며, 조상의 입은 벌어져 있다. 조상은 움직이지 않고, 조상은 활동사진에 깃든 영혼처럼 보인다. 조상이 있는 풍경은 유령 그림처럼 보이고 조상은 방금 막 전설적인 연극을 끝낸 것처럼 보인다. 조상은 단단하다. 조상에게는 관절이 없다. 조상에겐 표면뿐이다. 조상은 움직이지 않고, 조상의 자세만 시시각각 변화한다. 조상은 덩어리다. 조상에게는 팔도 없고 눈도 없고 입도 없다. 조상은 울거나 웃지 않고, 앉거나 서지도 않는다. 조상이 있다. 조상은 조상 아닌 것과의 입체경계면이다. 조상에게는 내부만 있다. 조상에게는 내부가 없다. 조상은 전해진다. 조상의 바깥이 전해져 내려온다.
사자는 조상에 그 모양으로 깃들어 있다. 사자는 자신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자는 혜희로부터 귓속말을 받아 조상 모양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대체 혜희란 뭐야? 혜희는 신이다. 그리고 이것은 데모이니라... 하는 말을 사자가 이제 기억한다. 조상 모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