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채형주
그렇게 있으니 꼭 유령 같네. 들어오도록 해. 내가 뜨거운 차를 줄게. 말하는 형주는 이제 마치 사람처럼 보인다. 형주의 손짓은 이제 온화하다. 형주의 목소리는 이제 또렷하고, 이제 부드럽다. 형주의 머리는 차분하며, 더는 그 속에서 꺼진 듯한 눈으로 혜희 뒤쪽의 허공을 보지도 않는다. 형주의 분명한 얼굴의 방향과 또렷한 눈동자가 혜희의 시선을 너무나 익숙한 움직임으로 붙잡는다. 혜희는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느낀다. 인간은 죽지 않고도 세상에서 이렇게 영영 사라질 수 있다. 통속적이군. 혜희는 자신도 이제 그렇게 보일 것임을 안다. 아냐. 너는 변한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해. 형주는 접시에 비스킷을 몇 개 올려 가져온다. 대체로 그대로야. 거의 안 변했어. 형주의 턱은 더 이상 기묘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형주는 입을 분명하고 바르게 움직여 말한다. 몇 년 전에 네 소식을 들었어. 차라리 편해졌지. 나는 포기를 더 미룰 수 없었어. 많이 변했지.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지금까지, 라는 생각이 아직도 가끔 든다. 그러나 너를 봐도 거의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나도 많이 변한 거야. 많이 변했지. 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 주절거리고. 이것도 통속적이지? 형주는 소파에 한껏 몸을 묻는다. 영전의 자식들 중 하나가 올라와 형주의 무릎에 머리를 올린다. 맞아. 내게는 이제 소파도 있어. 영전은 없지만. 차는 썼고 과자는 달았다. 형주는 이제 배 위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다. 저들끼리 장난치던 개들도 그 주위로 모여든다. 차가 식고 있다. 개들도 눈을 감고, 혜희는 입을 연다. 들어라 너 개 주인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