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을 어귀에 다다름

저 마을은 이상한 공기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느낌을 따라 이곳으로 왔다. 운명의 안개 같은 것을 따라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에 서서 나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속삭여 본다. 이 세계의 어떤 슬픈 것이라도 지금의 나보다 슬프지는 않네.

그 공터에서 마성의 제자들을 보았던 것은 이제 꿈과 같이 느껴진다. 나는 길고 인적 없는 길을 오래 걸었다. 인간이 만든 것은 길뿐인 곳, 이렇다 할 경계가 없어서 어떤 곳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곳들을 지나쳤다. 영원할 것 같은 파랑과 바랜 갈색, 먼 풍경과 가까운 풍경을 질리도록 보며 걸었다. 정적을 견딜 수 없을 때마다 나는 서기보에게 받은 워키토키를 꺼내 아무렇게나 말을 걸었다. 후, 서기보, 풀이란 무엇이지요? 별이란 무엇이지요? 기쁨이란 무엇이지요? 그때마다 서기보는 어떤 식으로든 대답해줬다.

그것은 빛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금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비 같은 것입니다.

서기보의 목소리는 먼 공중을 건너오느라 언제나 지쳐 있었다. 이제는 작고 검은 그 기계가 서기보인 것처럼 느껴진다. 몸통과 입과 귀만 남은 서기보인 것처럼. 나는 그냥 그것을 서기보라고 부른다. 오래 산 풍뎅이 같은 서기보. 나는 서귀보라고, 서기버라고, 사기보라고 말해 본다. 나는 서기보가 일러준 대로, 서기보의 겨드랑의 검은 단추를 누른 채, 방사형으로 자리잡은 서기보의 귓구멍들에 짧은 숨을 불어넣은 후 아무렇게나 말한다. 서기보의 고대적인 귓구멍들에...

후, 서기보, 어쩌다 만사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만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맙시다.

다시 일어난 시체를 만난 적이 있나요?

있습니다.

어떻던가요?

그 이야기도 하지 맙시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수도로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신은 문답을 좋아합니다.

나는 무엇인가요?

당신은 이곳입니다.

문답을 좋아하는 나는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서기보, 나는 마을로 들어가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그게 전부다. 그것은 서기보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때의 답이다. 알겠습니다. 서기보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이제 첫 번째 마을로, 마을의 이상한 공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시간을 가리는 공기다. 나는 희미해지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며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를 본다.

겨우내 걸어오면서 말동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치지 않는 말동무를. 따지자면 그 방을 나온 것만으로도 무리를 한 셈이라, 나로서는 혼자서 끝없이 말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 서기보는 바쁘다. 나는 기어이 당신을 붙들고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는 드디어 마을 입구의 아름드리 나무 아래를 지난다, 이 나무는 아직도 잎을 틔우지 않았다, 나는 이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 마을보다 유명한 나무다, 성현이 이 나무의 거대한 그늘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을 때, 마른 가지를 던져 준 상냥한 나무의 이야기로, 마른 가지를 왜 던져줬을까? 마른 가지를 만지라고? 성현이 울면서 마른 가지를 만졌다는 이야기, 나는 이 나무에 대해, 그리고 성현의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이를 찾지 못한다. 어째서 아무도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느낀다. 누군가 있어야 할 텐데.

거기 길잡이 씨!

그리고 그것은 마치 펜으로 그은 것 같은 맑고 쾌활한 목소리다. 나는 나무가 말을 했다고 순간 생각하다가, 생각보다 젊은 목소리라고도 생각하다가, 길에 면하지 않은 나무 둥치 뒤편으로 얼른 돌아 들어간다.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집 나간 개를 찾듯이 돈다. 뒤편엔 집 나간 개만큼이나 초라한 행색의 사람이 풀잎을 물고 둥치에 기대어 있다. 나는 왜 풀잎을 물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묻는다.

나요?

여기 나와 당신 말고는 없소!

나를 뭐라고 불렀지요?

길잡이라고 불렀소.

당신은 누구죠?

나는 첨병이오.

첨병은 자신의 낡아 빠진 갈색 제복 팔뚝에 걸린 완장을 집어 보인다.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진, 부드럽게 바랜 푸른색 완장이다. 그 완장은 갖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첨병의 허리춤에는 팔뚝 정도 길이의 희고 반들반들한 막대기가 매달려 있다. 성현이 첫 첨병들에게 잘라 나눠 주었다고 전해지는 가지다. 비를 피할 때 울면서 만졌다던 그 가지 말이다. 눈앞의 첨병은 지금 막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야말로 모두가 아는 그 첨병이다. 나는 너무나 오랜만에 봤다. 첨병들! 하지만 나와 함께 놀라 줄 이는 없다. 첨병의 눈동자는 다정하게 빛나고 있다. 오랜만에 본 게 아니다. 나는 첨병을 처음으로 봤다.

나를 어떻게 알아요?

눈썰미가 좋거든.

첨병은 윙크를 하며 나의 윗옷 주머니에 걸린 서기보를 가리킨다.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라는 게 내가 받은 명령이었소.

그래요? 다음은요?

첨병은 발치에 있던 행낭을 들어 뒤지며 말한다.

당신은 질문을 좋아하는군? 그 다음은 다음 길잡이를 기다리는 것이오. 계속 여기서. 여긴 아주 유서 깊은 마을이니까.

그게 무슨 유서냐고는 왜 묻지 않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첨병은 행낭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턱에 낀다. 그리고선 자신의 산발된 푸른 머리칼을 그러모아 뒤로 묶는데,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린다. 나는 첨병에게 빠르게 매혹되고, 제발 첨병을 앞으로 데려가고 싶어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진다.

지금까지 본 길잡이가 몇이나 되나요?

모르오.

두루마리가 첨병의 턱에서 손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명령서요.

나는 명령서를 받아든다.

길잡이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