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검은 골짜기를 지남
우유운반자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자라며 온갖 이야기를 다 들은 탓인지 도대체 두렵거나 꺼리는 기색이라고는 없다. 아마 이 세계의 그 어느 아이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다 좋게 끝났단 말인가? 그의 얼굴에는 묘한 흥분마저 떠올라 있고, 언뜻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단지 그의 볼이 붉기 때문에? 도리어 내가 문제다. 다리가 자꾸 떨리고 꺾인다.
밤에는 산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항상 밤이고, 우리는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우리는 검은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각자의 초롱을 들고서. 새까만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능선 위 하늘은 흑자줏빛이다. 달이나 별은 없다. 앞을 보면 우리의 양편에는 꺼지지 않는 촛불들, 촛불들은 골짜기 양편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내려가고 있다. 나무들 사이에서 깜빡이는 촛불들은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이 바깥은 밟지 말라는 듯 길 아닌 길을 이루고 있다. 나로선 감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겁 없는 우유운반자는 가까이에서 보고 온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초가 촛대에 꽂혀 있을 뿐이에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에 또 으스스해진다. 촛대는 또 뭔가.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낙엽도 밟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노랫소리도 듣고 있다. 그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찬송이다. 목소리는 하나였다가 둘, 넷이나 그보다 더 많아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반복한다. 익숙한 가락인지 가락에 익숙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소리는 우리가 낙엽을 밟으며 한참을 내려가는 와중에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다. 골짜기를 따라 달려 오르는 바람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며 노래처럼 들릴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대체 누가 믿겠는가. 이 성가대의 발음은 정확하고, 나는 애써 그로부터 주의를 돌린다. 집중하면 까무러칠까 두렵다. 몇 개의 단어가 들린다. 도시... 재...
따라 부르지 마시오.
앞장서 걷고 있던 첨병이 돌아보며 말한다. 그 얼굴을 보고 나도 덩달아 돌아본다. 바닥을 보며 걷던 우유운반자가 허리께에 부딪친다. 뒤에는 전도자의 몸통이 떠 있다.
누구야?
당신 아닙니까?
아니. 난 너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아니죠. 당신도 무서움을 아나요?
너 뭐가 불만이야? 무서워서 그러니?
저요. 제가 불렀어요. 이 골짜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우유운반자가 말하고 초롱을 쳐들자 서로의 얼굴이 드러난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요?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이가 셋이나 됩니다.
넷이지. 직접 해보시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긴 해요.
우유운반자는 기다린 것처럼 달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가 맞긴 하다. 우리는 다시 내려간다. 운반자의 높고 가는 목소리가 골짜기의 노랫소리를 덮는다.
첨병의 고향에서 나가는 길이 여럿 있지만, 이 길이 제일 빠릅니다. 특히 수도 방향으로 간다면요. 검은 골짜기는 떠나는 길입니다. 첨병의 고향을 떠나는 이는 길잡이이거나 길잡이를 만나러 온 첨병뿐.
목소리가 좋네요.
우유운반자는 전도자에게 감사하다 답하고 목청을 가다듬어 한층 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전도자 님, 그리고 저, 우유운반자 같은 이들도 있군요! 어제의 노인들 역시 이 길로 내려갔을 겁니다. 어쩌면 이 낙엽 더미 아래에 누워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불쌍한 일이죠. 여하튼 이 골짜기는 떠나는 길입니다. 내려가기만 되고 올라갈 수는 없다고 해요.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이 노랫소리가 절대로 참을 수 없이 무섭게 들린다고 합니다. 내려가며 듣는 지금도 충분히 오싹하지만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이 순간을 위해 우유운반자가 혼자 했을 연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온다.
오를 때 들릴 그 소리가 몹시 궁금함에도, 저조차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골짜기를 오르려는 이는 너무나 두려워 무릎이 꺾이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엎드려 있어도, 잠도 아침도 오지 않습니다. 그는 포기하고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거나 포기하지도 못한 채 그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대로 죽습니다. 낙엽 속에서 웅크린 그들의 시체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목소리를 더한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수많은 유령들이 이 골짜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첨병의 고향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모릅니다. 그들이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오르는 이가 두려운 것이고, 내려가는 이는 노랫소리 덕에 그 시선을 잊어 덜 두렵다고도 합니다. 그 이야기의 경우라면 노래는 누가 부르는가? 유령들이 부른다는 간단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저 촛불들을 보십시오. 저 녹지 않는 촛불들이 부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옛날 한 주술사가 이 골짜기에 노래하는 촛불들을 켜뒀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위해? 모릅니다.
수도 방향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수도에서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만다. 주술사와 유령들의 이야기, 그리고 낙엽에 대한 이야기도 하려다가 만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한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 때문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전설입니다. 마치 노래처럼 들리지만, 그저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며 내는 소리일 뿐이니까요.
나는 웃고, 박수를 친다.
밤에는 산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들 한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항상 밤이고, 우리는 이곳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우리는 검은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고 있다. 각자의 초롱을 들고서. 새까만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능선 위 하늘은 흑자줏빛이다. 달이나 별은 없다. 앞을 보면 우리의 양편에는 꺼지지 않는 촛불들, 촛불들은 골짜기 양편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꽂혀 내려가고 있다. 나무들 사이에서 깜빡이는 촛불들은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밝히지 않고, 이 바깥은 밟지 말라는 듯 길 아닌 길을 이루고 있다. 나로선 감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지만 겁 없는 우유운반자는 가까이에서 보고 온다.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초가 촛대에 꽂혀 있을 뿐이에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에 또 으스스해진다. 촛대는 또 뭔가.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낙엽도 밟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노랫소리도 듣고 있다. 그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찬송이다. 목소리는 하나였다가 둘, 넷이나 그보다 더 많아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기를 반복한다. 익숙한 가락인지 가락에 익숙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소리는 우리가 낙엽을 밟으며 한참을 내려가는 와중에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다. 골짜기를 따라 달려 오르는 바람이 나무들 사이를 지나며 노래처럼 들릴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대체 누가 믿겠는가. 이 성가대의 발음은 정확하고, 나는 애써 그로부터 주의를 돌린다. 집중하면 까무러칠까 두렵다. 몇 개의 단어가 들린다. 도시... 재...
따라 부르지 마시오.
앞장서 걷고 있던 첨병이 돌아보며 말한다. 그 얼굴을 보고 나도 덩달아 돌아본다. 바닥을 보며 걷던 우유운반자가 허리께에 부딪친다. 뒤에는 전도자의 몸통이 떠 있다.
누구야?
당신 아닙니까?
아니. 난 너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아니죠. 당신도 무서움을 아나요?
너 뭐가 불만이야? 무서워서 그러니?
저요. 제가 불렀어요. 이 골짜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우유운반자가 말하고 초롱을 쳐들자 서로의 얼굴이 드러난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요?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이가 셋이나 됩니다.
넷이지. 직접 해보시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긴 해요.
우유운반자는 기다린 것처럼 달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가 맞긴 하다. 우리는 다시 내려간다. 운반자의 높고 가는 목소리가 골짜기의 노랫소리를 덮는다.
첨병의 고향에서 나가는 길이 여럿 있지만, 이 길이 제일 빠릅니다. 특히 수도 방향으로 간다면요. 검은 골짜기는 떠나는 길입니다. 첨병의 고향을 떠나는 이는 길잡이이거나 길잡이를 만나러 온 첨병뿐.
목소리가 좋네요.
우유운반자는 전도자에게 감사하다 답하고 목청을 가다듬어 한층 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전도자 님, 그리고 저, 우유운반자 같은 이들도 있군요! 어제의 노인들 역시 이 길로 내려갔을 겁니다. 어쩌면 이 낙엽 더미 아래에 누워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불쌍한 일이죠. 여하튼 이 골짜기는 떠나는 길입니다. 내려가기만 되고 올라갈 수는 없다고 해요.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이 노랫소리가 절대로 참을 수 없이 무섭게 들린다고 합니다. 내려가며 듣는 지금도 충분히 오싹하지만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이 순간을 위해 우유운반자가 혼자 했을 연습이 상상되어 웃음이 나온다.
오를 때 들릴 그 소리가 몹시 궁금함에도, 저조차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골짜기를 오르려는 이는 너무나 두려워 무릎이 꺾이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엎드려 있어도, 잠도 아침도 오지 않습니다. 그는 포기하고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거나 포기하지도 못한 채 그곳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대로 죽습니다. 낙엽 속에서 웅크린 그들의 시체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목소리를 더한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수많은 유령들이 이 골짜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첨병의 고향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모릅니다. 그들이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오르는 이가 두려운 것이고, 내려가는 이는 노랫소리 덕에 그 시선을 잊어 덜 두렵다고도 합니다. 그 이야기의 경우라면 노래는 누가 부르는가? 유령들이 부른다는 간단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저 촛불들을 보십시오. 저 녹지 않는 촛불들이 부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옛날 한 주술사가 이 골짜기에 노래하는 촛불들을 켜뒀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위해? 모릅니다.
수도 방향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수도에서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만다. 주술사와 유령들의 이야기, 그리고 낙엽에 대한 이야기도 하려다가 만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한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 때문에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전설입니다. 마치 노래처럼 들리지만, 그저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바람이 나무를 흔들며 내는 소리일 뿐이니까요.
나는 웃고, 박수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