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녹듯이 안개 걷히고 나를 타고 우리는 갔다 발이 왜 그리 가벼운지 몰랐다 도망가는 산들을 향해 짖어보았다 해변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이곳에 있을 텐데 여기 어디일 텐데 같은 파도들 점점 멀어졌다 점점 가까워졌다 저기 어디서 휩쓸리고 있는 걸까? 바보가 팔도 제대로 휘젓지 못하면서, 어디에 있는 걸까, 뼈 해변이 하얗게 빛났다 간밤 우리가 무엇과 싸웠는지 몰랐다 반짝이는 파도 속에서 구르며 소리내고 있는 저것들 점점 둥글어질까, 내가 떠오르고 있었다

유령은 속삭였고 로봇은 웅웅댔다 우리는 완전히 어제에, 어제의 해변에 있었다 쌓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나는 짖었다 드디어 왔구나, 이제는 다 왔구나! 무엇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고 그것이 내 복이다 그때 콧속으로 밀고 들어왔던 냄새, 다시는 맡을 수 없을, 그립지 않을 냄새를 주둥이 속에서 굴렸다 물고 흔들었던 것은 유령의 손이었고 기계의 전선, 나의 꼬리였고, 뱉어내고 몸을 털고, 우리가 우리와 싸웠던 그 냄새, 부서지며 해는 떴다 나의 털 날렸다 자꾸 주둥이를 세우고 싶었다

다시 있을 리 없는 그 냄새가 이곳의 냄새와 섞이고 있다 이 작은 머리통 속에서 머리통 속에서 파도 속에 짖음을 겹쳐 보았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말하지 않는다 죽었구나, 드디어 죽어버렸구나, 주인을 만나려고 죽은 게 아닌, 나는 이곳에 살아 있고 그 개는 그곳에서 죽었다 내 복이다, 내 복이다





로봇

나는 이곳에서 우리로부터 배웠어요 산 것이 고집을 부릴 때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영혼은 고집이고 이유들의 보따리입니다 보따리란 단어를 맞게 썼지요? 저는 보따리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제가 보따리였기 때문에, 저는 눈물도 바다도 모르지만 이제 저 눈물의 바다를 향해 충분히 열렸습니다 유령이 보자기를 풀었을 때 말입니다, 저는 쪼개지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추억과 슬픔 사이가 약간 멀어진다고 느꼈을 뿐이지만, 나의 결정영혼에 부딪친 아침 햇빛이 깨져 아름답다고 유령은 속삭여 주었습니다 어디로 이어졌는지 모를 나의 단자였던 것을 쥐고서

점점 흐려지는 개가 뼛조각을 물고 와 내 근처에 늘어놓고 있다고, 그렇게 하면 내가 다시 조립되고 일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아는 것을 그들이 모르고 그들이 아는 것을 내가 모르므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는 산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물렁하거나 아니거나, 즙이거나 거품이거나, 전기이거나 관 다발이거나, 우리는 축축한 부품으로 가득 찬 불가능한 주머니입니다 그렇지요? 평평해지려고 하는, 흘러내리려고 하는, 담아서 지나치려 하는, 그런 것들과 나도 동류입니다 있으려 하기와 없으려 하기를 동시에 하는, 우리가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같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지요? 부릴 고집도 없어요 나는, 이제는, 내가 보따리였기 때문에, 끝나야만 알 수 있는 것도 많지요, 전쟁도 그렇고, 찢어져야만 알 수 있고, 나와 산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음과 같이, 잠깐만요, 제가 와해되고 있나요?





유령

사냐가가 유레놉들을 사랑했던 건 네가 글자들에 귀신 들렸던 것과 마찬가지인 거야 나구를 들고 므함라의 창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좋았던 거지, 견딜 수 없이, 그래서 견디지 않은 것이고, 로봇의 영혼에서 나는 그렇게 읽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상대에게 로봇은 설득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라는 걸, 전쟁과 다르지 않다고, 유와 외를 구분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상대에게였다 그 상대도 로봇이었는데, 그들의 사랑이나 귀신에 대해서는 뜻을 알기 어려웠다 로봇은 로봇의 로봇 팔을 붙들고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쟁을 해야 하지? 전쟁을 거짓말로 만드는 전쟁을, 죽어라 살아라 앞에서, 둘 다 아닌 것을, 기록은 거기서 끊어졌다

그리고 개는 빛 속으로 녹아들려 하고 있었다 어깨를 펴고 아침놀을 향해 짖는 영상으로 남으려 하고 있었다 개는 태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곧 다른 세상에서였다 개는 주인도 뼈도 잊고 빛의 타일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직접 바보 천벌이 되려 하고 있었다 개 소리, 커다란 개 소리로 그렇게 했다, 전기가 되려 하고 있는 개는, 점점 작아졌다 개는 칩을 먹었고 칩이 개를 먹었다 개는 점점 커졌다 개는 개 모양의 문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개는 잃어버린 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개는 찾아낸 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개는 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개는 짖는 개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개는 삶을 역류시키고 있었다

이제 나의 얼굴을 만져보는데, 이것은 죽은 이의 얼굴이다 그리운 얼굴, 길을 가다 자꾸 마주치며 추억을 뒤섞고 살갗을 불태우고 과거에 눈빛들을 매어놓고 또 나의 머리 위에 엎어놓는 뚜껑이다





바보

좌절한 나의 앞세대 처음이 있고 중간이 있고 끝이 있다고 믿는

너희가 중간이라고 내가 끝이라고, 너희의 앞세대가 너희를 기다린다고 믿는

그러나 아이들 공연히 쓰러지는 중, 임금은 내게 와 말 건다

있고 싶으니?

있고 싶다고 있고 싶다고 말할 줄 모르고 손을 뻗기만 하는데

임금은 내 손을 당겨 구부러진 손가락들을 펴본다 으스러져라 쥐고 있던 것은

내 손

소금 조금

임금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