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영전
느낌은 먼 길을 돌아서 오는 것 같았다. 영전이 고개를 들어 y를 보았다. y는 개집에 넉가래를 기대어 놓고 젖은 장갑을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영전은 나와서 냄새를 맡다가 별 흥을 못 찾았는지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y도 쪼그려 앉아 영전의 단단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전 같았으면 손이라도 핥으려 들었을 것이나 이제 영전은 가만히 y의 눈을 보기만 했다. y는 끙, 하고 일어나 영전의 집 위에 쌓인 눈을 쓸어 내렸다. 뭐 하는 거냐. 그 아래 어지럽게 찍혀 있던 영전의 발자국들이 사라졌다. 영전이 그 모양을 보고 몸을 턴다. 이때가 되면 마음이 정해지지 않을까 했다. 이제 반드시 발을 구르고 집으로 들어가 곱은 손으로 귤 하나를 깔 것이며, 그것을 자기가 먹을지 아니면 영전에게 던져줄지 또 고민할 것이다. 죽기 전에는 뭘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들었다.
대학생이었을 적에, 만 년쯤 살다가 자살할까 자연사할까 고민하던 도중 자연사 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y는 슬며시 웃었다. 만 년은커녕 백 년도 살지 못했지만 벌써 슬며시 웃을 도리밖에 없다. 영전은 앞발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놓았다. 다른 곳보다 털 빛깔이 더 어두운 영전의 눈두덩이 씰룩거렸다. 뭐 하는 거냐.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귤은, 어쩌면 반만 입에 넣고 나머지를 영전에게 던져줄지도 모른다. 영전은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턱을 적시며 먹을 것이고, y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씹어서 삼킬 수 있을지 어쩔지는 모른다. 미지근한 주홍색 죽을 물고 갈지도 모른다. 또는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그대로 갈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귤을 입에 넣고 깨물면 그것이 터지며 즙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귤이 남아 있던가? 이제는 발끝이 시렸다. y는 생각했다.
y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영전은 알고 있다. 눈을 감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잠에서 깨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부터 말할 수 있다. 지금껏 잠들었다가 깨지 않은 적이 없었고, 거기에는 다시 수많은 방식과 기분이 있었다. 당장 오늘의 기상을 떠올릴 수 있다. y가 일어났을 때 창밖은 환했다.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다시 자고 싶었다. 자려고만 했다면 더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y는 이불 속에서 발을 빼고 한기 속으로 몸을 일으켜야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기상은 우선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 이를 피로하게 여기는 일은 역시 여간 피로한 일이 아니다. y는 피로감을 기억한다. 잠을 자면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어떤 시기에는. 눈을 감고 있는 영전도 그렇다. 일생은 일단 그렇다고 y는 생각한다.
y는 영전의 밥그릇을 본다. 푸른 무늬가 희미하게 남은 사기대접에는 한 톨의 밥알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그리고 일어나 세계를 나눠먹은 것이지, 젊었던 언제라면 그렇게 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썼던 적이 있었다. y는 아직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끼니때마다 젓가락을 놀려 가장 적절한 크기의 반찬을 골랐다. 그도 결국에는 다 먹게 된다. 왜 이곳에서 이런 말들을 고르고 있는지 y는 알 것 같다. 뭐 하는 거냐. 이어서 영전을 보는 일이다. 젖은 땅 위에 길고 둥근 살덩어리가 놓여 있다. y는 어두운 입 속의 풍경을 상상한다. 아직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y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문다. 영전이 귀를 젖히며 머리를 들었다. 눈이 향하는 방향에는 공간이 있다. 잠에서 깬 뒤에는 그렇다. y는 허기를 느낀다. 젊었던 언제라면 그것을 구원의 예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다. 먹을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어제는 밥을 짓지 않았다. 영전이 몸을 일으킨다. y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밥그릇 안에는 무엇인지 모를 미색 자국과 눈이 조금 남아 있다. 영전이 먹지 않은 것이다.
y는 다음 일어날 일을 안다. 영전은 킁킁대며 집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자국 몇 개가 찍혔다. 영전의 앞날에 영광을... y의 말장난은 전혀 우습지 않다. 영전은 y의 발치에서 멈췄다가 제 집 뒤편으로 향한다. y는 영전을 따라가며 눈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영전은 뒷다리를 벌린 채 궁둥이를 뒤로 빼는 중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땅과 눈 사이에서, 영전은 갑자기 닥쳐올 미래를 집중해 바라보는 것 같았다. y는 영전의 쭉 뻗은 등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그렇게 했다. 오돌토돌한 등뼈가 어쩌고 하는 소리는 사치스럽다. y는 생각한다. 야윈 영전은 y가 쓰다듬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똥을 눈다. 둥글게 말려 올라간 꼬리를 y는 만지고 싶지만 더 방해하지 않는다. 작은 흑갈색 덩어리들이 김을 내며 눈을 녹인다. 먹은 것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지나갈 때 갈퀴를 뻗어 그것을 가져가는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y는 변의를 느끼지 않는다. 배 근처에서는 뻥 뚫린 구멍만 느낄 수 있다. 뭐 하는 거냐. 영전은 볕이 드는 집 앞으로 돌아간다. 모서리를 돌며 하품하며 김이 나온다. 영전도 자신의 선명한 분홍색 혀와 피어오르는 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없는 것은 꿈에서도 없다. y는 그렇게 생각한다. 있는 것은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요설이 아닌가? 그러나 있는 것은 반드시 있다. 구멍은 느낌에 대한 것이다. 더 나아갈 시간은 없는 것으로 안다. 영전의 똥에는 더 이상 온기가 없다. 그러나 검게 녹은 자리를 y는 계속 본다. 그 근방으로 맑은 물기가 돌았다. y는 발끝으로 굴려보며 슬며시 웃는다. 뭐 하는 거냐.
영전의 집 옆에는 넉가래가 기대어져 있고, 영전의 모은 두 발 앞에는 젖은 장갑이 놓여 있다. 영전은 집으로 들어갔다. y는 손을 마주 비비며 발을 굴렀다. 귤껍질이 쌓인 쟁반을 받쳐 들고 신을 꺾어 신었다. 양말 뒤꿈치가 차가웠다. 영전이 꼬리를 치며 일어선다. 쟁반을 휘둘러 그것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다. 영전이 그들을 향해 달려간다. 발자국이 또 생긴다. 영전은 쓰고 떫은 것이라도 먹을 것이다. 아닌가? 아닐 것이다. 별일이 아니다. y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쟁반을 내던지고 깔려 있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 일도 없이 숨이 가빴다. 웅크린 채 애써 몸을 떨었다. 옷을 차례로 벗어 뱉어냈다. 곧 따뜻해질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느낌이 먼 길로 나간다. 영전이 어디에 대고 짖는 소리를 들었다.
대학생이었을 적에, 만 년쯤 살다가 자살할까 자연사할까 고민하던 도중 자연사 했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y는 슬며시 웃었다. 만 년은커녕 백 년도 살지 못했지만 벌써 슬며시 웃을 도리밖에 없다. 영전은 앞발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놓았다. 다른 곳보다 털 빛깔이 더 어두운 영전의 눈두덩이 씰룩거렸다. 뭐 하는 거냐.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귤은, 어쩌면 반만 입에 넣고 나머지를 영전에게 던져줄지도 모른다. 영전은 음식을 거의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턱을 적시며 먹을 것이고, y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씹어서 삼킬 수 있을지 어쩔지는 모른다. 미지근한 주홍색 죽을 물고 갈지도 모른다. 또는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그대로 갈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귤을 입에 넣고 깨물면 그것이 터지며 즙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귤이 남아 있던가? 이제는 발끝이 시렸다. y는 생각했다.
y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영전은 알고 있다. 눈을 감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잠에서 깨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부터 말할 수 있다. 지금껏 잠들었다가 깨지 않은 적이 없었고, 거기에는 다시 수많은 방식과 기분이 있었다. 당장 오늘의 기상을 떠올릴 수 있다. y가 일어났을 때 창밖은 환했다.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다시 자고 싶었다. 자려고만 했다면 더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y는 이불 속에서 발을 빼고 한기 속으로 몸을 일으켜야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기상은 우선 피로한 일이다. 그러나 거의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 이를 피로하게 여기는 일은 역시 여간 피로한 일이 아니다. y는 피로감을 기억한다. 잠을 자면 반드시 일어나기 마련이다. 어떤 시기에는. 눈을 감고 있는 영전도 그렇다. 일생은 일단 그렇다고 y는 생각한다.
y는 영전의 밥그릇을 본다. 푸른 무늬가 희미하게 남은 사기대접에는 한 톨의 밥알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그리고 일어나 세계를 나눠먹은 것이지, 젊었던 언제라면 그렇게 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썼던 적이 있었다. y는 아직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끼니때마다 젓가락을 놀려 가장 적절한 크기의 반찬을 골랐다. 그도 결국에는 다 먹게 된다. 왜 이곳에서 이런 말들을 고르고 있는지 y는 알 것 같다. 뭐 하는 거냐. 이어서 영전을 보는 일이다. 젖은 땅 위에 길고 둥근 살덩어리가 놓여 있다. y는 어두운 입 속의 풍경을 상상한다. 아직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y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문다. 영전이 귀를 젖히며 머리를 들었다. 눈이 향하는 방향에는 공간이 있다. 잠에서 깬 뒤에는 그렇다. y는 허기를 느낀다. 젊었던 언제라면 그것을 구원의 예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다. 먹을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어제는 밥을 짓지 않았다. 영전이 몸을 일으킨다. y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밥그릇 안에는 무엇인지 모를 미색 자국과 눈이 조금 남아 있다. 영전이 먹지 않은 것이다.
y는 다음 일어날 일을 안다. 영전은 킁킁대며 집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새로운 발자국 몇 개가 찍혔다. 영전의 앞날에 영광을... y의 말장난은 전혀 우습지 않다. 영전은 y의 발치에서 멈췄다가 제 집 뒤편으로 향한다. y는 영전을 따라가며 눈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영전은 뒷다리를 벌린 채 궁둥이를 뒤로 빼는 중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땅과 눈 사이에서, 영전은 갑자기 닥쳐올 미래를 집중해 바라보는 것 같았다. y는 영전의 쭉 뻗은 등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그렇게 했다. 오돌토돌한 등뼈가 어쩌고 하는 소리는 사치스럽다. y는 생각한다. 야윈 영전은 y가 쓰다듬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똥을 눈다. 둥글게 말려 올라간 꼬리를 y는 만지고 싶지만 더 방해하지 않는다. 작은 흑갈색 덩어리들이 김을 내며 눈을 녹인다. 먹은 것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지나갈 때 갈퀴를 뻗어 그것을 가져가는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y는 변의를 느끼지 않는다. 배 근처에서는 뻥 뚫린 구멍만 느낄 수 있다. 뭐 하는 거냐. 영전은 볕이 드는 집 앞으로 돌아간다. 모서리를 돌며 하품하며 김이 나온다. 영전도 자신의 선명한 분홍색 혀와 피어오르는 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없는 것은 꿈에서도 없다. y는 그렇게 생각한다. 있는 것은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요설이 아닌가? 그러나 있는 것은 반드시 있다. 구멍은 느낌에 대한 것이다. 더 나아갈 시간은 없는 것으로 안다. 영전의 똥에는 더 이상 온기가 없다. 그러나 검게 녹은 자리를 y는 계속 본다. 그 근방으로 맑은 물기가 돌았다. y는 발끝으로 굴려보며 슬며시 웃는다. 뭐 하는 거냐.
영전의 집 옆에는 넉가래가 기대어져 있고, 영전의 모은 두 발 앞에는 젖은 장갑이 놓여 있다. 영전은 집으로 들어갔다. y는 손을 마주 비비며 발을 굴렀다. 귤껍질이 쌓인 쟁반을 받쳐 들고 신을 꺾어 신었다. 양말 뒤꿈치가 차가웠다. 영전이 꼬리를 치며 일어선다. 쟁반을 휘둘러 그것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다. 영전이 그들을 향해 달려간다. 발자국이 또 생긴다. 영전은 쓰고 떫은 것이라도 먹을 것이다. 아닌가? 아닐 것이다. 별일이 아니다. y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쟁반을 내던지고 깔려 있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한 일도 없이 숨이 가빴다. 웅크린 채 애써 몸을 떨었다. 옷을 차례로 벗어 뱉어냈다. 곧 따뜻해질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느낌이 먼 길로 나간다. 영전이 어디에 대고 짖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