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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혜희는 멈춰 섰다. 주위가 서늘했다. ‘악은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만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웃기는 소리! 이제는 모든 것이 문학이 되어 가고 있다. 분신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이곳은 사람을 낳아야 하는 곳이 아니라 죽이라 하는 곳이다. 우산대를 너무 꽉 붙든 혜희의 손이 하얗게 질렸다. 손에서 시작된 떨림이 어깨, 가슴, 허리를 지나 허벅지까지 훑고 지나갔다.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 손, 아니 빗소리가 들렸다. 가로등 아래 쌓인 쓰레기 더미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동안 혜희의 시선은 줄곧 한 점에 붙박였다. 번쩍거리며 흐르는 구정물 아래 검고 길쭉한 뭔가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털목도리처럼 보였다. 털로 뒤덮인 뱀, 혹은 새끼를 낳고 있는 뱀 같기도 했다. 혜희는 분명히 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눈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눈을 비비고 나자 그것은 보란 듯이 서서히 두 동강 났다. 허리가 부러진 뱀? 잘린 뱀? 혜희는 휘청였다. 뱀의 머리와 꼬리가 만났다. 아니고, 그것은 머리와 머리가 만나는 광경이었다. 두 마리의 죽은 쥐였다. 두 개의 꼬리와 두 개의 머리가 혜희의 발아래 다다랐다. 번개가 쳤다. 그리고 ‘어째서?’ 생각이 든 순간에,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가로등과 건물의 불이 모두 꺼졌다.
그때 내가 말한다. 내 친구 중에 내가 없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나에게 내가 있었더라면! 당신께 고하기를, 이 패배를 좌시할 수 없다. 내가 내 방에 앉아 악과 마주하는 풍경을. 흰 빛으로 질린 악은 오직 당신의 등장으로, 두 번째 혼 앞에서만 법칙 잃은 걸음으로 도망친다. 내 친구 중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이 패륜을 고발한다. 당신은 어둠, 무게들이 그 앞에서 얼마나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지, 한편 악은 자신을 얼마나 열렬히 원하고 있는지, 천천히 사그라드는 불더미 앞에서 악은 나의 귀에 욕망이자 그것의 파괴인 것을 흘려 넣는다.
악은 나다. 당신께 그것을 드림, 이것은 목격의 수기이며, 살인의 수기이다.
악은 나다. 당신께 그것을 드림, 이것은 목격의 수기이며, 살인의 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