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가 태어난 고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직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그는 수도의 공장에 있었다. 학살자들은 어디에나, 미래까지 버티고 있다. 여기에 있으면 저기에도 있다. 저기에 있다가 여기에 있다. 다행도 불행도 아니고 원통만 밥처럼 쥐여진다. 그리고 내가 손을 얻기 전 그가 태어난 고장은 유폐되었다. 오가던 말이 끊겼고 흘러내린 명령이, 전차와 군대가 그에게 몇 가지 소식을 남겨두었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철이 그 임무를 다했는지, 유리구 속의 라디오 방송국이, 누워 바라본 창밖의 파르스름한 아침, 다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누가 누구에게 빚졌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쓰러진 벽들로 쌓인 산, 골짜기에서 해발은 가늠되지 않았다. 그들은 싸우다 죽었다고 들었다. 그 일은 끝나지를 않는다.

 배고픔은 유령처럼, 죽은 옛 기억들을 사열시키고 그 위를 그림자로 덮는다. 주세요, 쥐라도 먹겠어요, 둘이면 더 좋고요. 대로 양편에 운집한 군중 사이에서 소동이 벌어진다. 두 마리의 쥐가 좁쌀 같은 발로 어두운 발등들을 타 넘는다. 발목에 스치는 살구색 꼬리가 영영 잊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로로 뛰쳐나가고, 겁에 질려 얼어붙은 얼굴 속으로 그림자가 폭발한다. 배고픔은 비행선의 승객들과 함께 전소하고 역사에 각인된다. 하늘을 바라보면 한 인간의 얼굴이 떨어진다. 그리고 두 인간, 세 인간의 얼굴이. 떨어진 얼굴들이 얼굴 위로 흘러내린다. 배 속에 얼굴이 가득해 더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두 쥐가 발밑에서 나를 본다. 모른다! 난 모르는 일이다!

 혜희는 쓰레기더미 옆에서 나를 보고 있다. 어떻게 할까, 산이 보이지 않는 거리에 인간의 형상이 나다닌다. 두 쥐는 있지만 사라져, 그들의 몸체도 있지만 사라져, 산이 보이지 않는 자취, 연소당하는 자국 같은 삶들, 추한 식으로만 각인되는 꼬리와 꼬리뿐인 행진, 거울의 결처럼 선두에 놓인 세상의 이러함, 꿈, 내가 만든 나의 밥은? 산을 부수는 혜희의 웃음, 산을 부순다니? 밥을 만든다니?
 혜희가 세모진 거울 조각을 들어 보인다, 어떠니? 나를 찢어놓는다면 이 모든 일도 끝이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가능해진다.
 나라고 하지 말라! 이제 더는 나라고 하지 말라! 당신 몸도 주인도 산더미처럼 남은 할 일들 뒤에서 입을 다문다. 당신의 입에서 배후가 도망치고, 나는 갈 거야. 저기 개 주인 간다. 집으로 간다.

 당신 앞에서 우리는 뻗어 잡았던 손을 놓는다. 탈색된 당신과 어둠의 필요가 서로에게 작별을 고한다. 말은 영영 필요 없으리, 입 다무는 것도 필요 없으리. 모두가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다고 하려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말하고 있다고 하려다, 내가 이 위로 떨어지면, 떨어지기만 하면 다 같아진다고 하려다, 나는 지금도 당신이고, 당신과도 안녕이다.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이것이 내 위로 떨어지기만 하면 즉시 완료되는 거야! 저기 개 주인 간다.
 이 시간 앞에 증명은 없어. 영속도 구원도, 혜희는 웃음도 싫증난다고 한다. 고리도 점도 질린다고 한다. 증명되었어! 아이들의 비정한 장난이라고 한다. 더 망설일 이유도 그것을 원할 여유도 없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니? 날카로운 것을 보는 일만으로 무엇도 끊지 못한다. 다시 한번 돌아올 수 있겠니? 이곳에 다시는 없다. 죽어도 없다.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겠니? 어디까지를? 점 하나로, 당신은 저기에 있다가 여기에 있다. 그것으로 되겠니? 멀리 있던 가솔들이 모여들고, 모여들고……, 너는 얼굴을 붉히며 가리킨다. 대신 웃어주는 이는 나고, 아직 질리지 않은 것도 나다. 크고 작은 것을 구분하게 된 이후로부터, 많고 적은 것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지하를 향한 비약도 끝나야 한다. 말과 몸체가 서로에게 질문을 퍼부으며 내려가던 일도, 아직도 손에 들린 질문이 많아도, 너무 많아도. 혜희는 손에 들린 것을 이마에 대고 긋는다.

 기도할 수 없게 된 후로도 그녀를 따라 회당에 가고는 했다. 가자 하니 갔다. 그녀는 간절했다. 무엇이 그리도? 그 앞에 바위 짐을 풀어놓으라던 설교자를 향해, 나는 이곳에도 있는 그 책을 던지고 싶었다. 저 금테 안경에게…… 가증스러운…… 너의 말은 이렇다: 우리는 학살당하고 싶은 것이다! 기회만 된다면 학살을 하면서! 엎드려 기다리는 개와 같은 고행자는 당신 말고도 많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는 고행하지 않았고, 개들은 그 앞에 내 옆뒤에 앉아 있는데도. 그 책이 거기 있는 이유를 안다고 나는 생각했다. 말씀이란 흩어진다는 것이고, 섬김은 으스러진다는 것이다. 까마득한 데로 이어져 꿈틀거리는 미래의 징그러운 현기를 보이고, 설교자의 이마를 때리고, 물컵이 엎질러지고, 그녀가 화환처럼 정신을 잃는 광경은, 없었고 다만 기도 시간에는 손 모으고 그를 바라봤다. 그도 나를 바라봤다. 나야 그렇다 치는데 너는 왜 눈을 감지 않는지? 사랑을 말하며 죽이자 하는 너는, 기도하자 말하며 기도하지 않는 너는, 어린 나는 너를 통해 증오가 사랑 앞의 악대임을 배웠고

 가로등이 별천지로 빛난다. 색채로 세계가 뒤덮이는 것이 보기에 나쁘지 않다. 나는 구름 속의 보라, 반딧불, 태양들, 설원, 번개나 달이 아니고, 각자 방에 누워 반짝이는 참살망의 말단, 여기 세계에 악몽을 주고 또 꿈을 꾸게 만드는 가짜 별들아 글자들아 그림들아, 움직이는 점들아 선들아, 말 모르는 것들의 천국은 어느 천국이냐, 천사들은 거기에 있고 그곳에는 전기가 없고 하느님의 내장 없는 머리를 들어 받치고 계시다.
 눈보다 높은 곳에서 상처는 조망한다, 미천함은 선홍색, 노란색은 모멸감, 이곳 낙하뿐 훔치는 줄도 모르고 훔쳐왔던 것들을 흘려 보이며, 연 적 없던 두 번째 입이 고발한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라. 그러나 항상 돌아오는 길로 도망쳐라. 너는 막다른 골목에서 뒤돌아서라. 아직도 네게 남은 소식이 있다는 것, 네가 밀어야 할 바닥이 있다는 것, 우리 빛들은 항상 매달려 있고 떨어져 꺼진다. 핏물은 망설이지 않고 그 고장의 빛을 흙더미 사이로 숨겨준다. 기억해라, 눈들은 몇 개가 생기든 반드시 다물어진다. 봄 없는 이들을 떠올려라.

 상처보다 높은 곳에서 악마는 만사를 빨아들인다.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눈은 아직도 많다고, 눈구멍을 달라고, 더, 더 많이 열리게 해 달라고, 더 많은 외계를, 외계를 달라고, 빛을 좀 더 달라고 한다. 넌 아직도 말하는 법을 모른다. 구멍들을 막아 달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심연은 멀었으나 그 입구는 멀지 않았다. 혜희는 핏기 없는 볼을 내 볼에 가져다 댄다. 더운 밤을 앗아간 자리에 파란 불더미를 놓는다. 일렁이는 혀로 닫고 싶은 귀에 욕망을 쏟아 붓는다. 별을 향해 모여드는 벌레들, 수많은 다리 각기 움직이나 방향은 명백하다. 알갱이들이 늘어서 선을 짓고, 굵고 짙어지다간 다시 옅어진다. 이럴 순 없다, 이럴 순 없지 않은가! 얼룩도 남기지 않고 타오르는 중에도 우리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죽은 것처럼, 대신 움직이는 것은 혜희의 손가락이다. 그것은 나를 지문의 골짜기에 태우고, 긴 의지 밖으로 밀어 넣는다. 언덕에서 쏘아올린 살은 허공에서 부러진다. 어디 박히기 전에 바다가 쓰러진다, 쓰고 짜고 비릿한 얼굴이 파도처럼 턱밑에. 이마에 매달린 눈이 피를 흘릴 때에, 원치 않았던 그 증명은 들어가거나 나오고 흔들리며 밝혀진다. 민물이 뒤섞이고 살갗은 뒤집힌다. 한 번 더 뒤집힐 준비가 되어 있다. 바깥은 한없이 퍼져 나가는 거부로 가득하다.